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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식증 여성 환자들의 인슐린 논문 표절사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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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작성일 20-07-24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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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그는 소만의 표절 인정 사실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두 번째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의 친구 로스가 전화를 걸어

로드바드가 소만의 논문에 기술된 실험들이 실제로 전혀 수행된 것이 아니라고 확신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로스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비판에 가담하지 않겠다고 펠리그에게 선언합니다. 


한편 로드바드가 이 사태를 가능한 암묵적으로 처리할 것에 동의하지 않자 로스와 그녀의 관계는 점점 멀어졌습니다.

결국 로스는 그녀에게 '개인적인 보복을 위해 편지지와 연구시간을 탕진하지 못하도록' 경고하기까지 이르르게 됩니다.


이것은 브라질 출신의 다혈질 성격인 그녀의 화를 더욱 돋우었고, 그녀는 예일대 의대학장에게 편지를 보내게 됩니다.

그녀는 편지에서 '심각한 도덕적 문제의 중재'를 요구했습니다. 더 나아가 그녀는 소만과 펠리그의 논문에 담긴

데이터들이 조작된 것이라는 자신의 견해에 대한 근거를 상세히 적었습니다. 특히 그녀는 환자의 진료를 담당한

정신과 의사의 이름이 논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수상히 여겼습니다.



<비제이 소만>


예일대 의대학장 베를리너 교수는 곧바로 펠리그에게 환자들의 의료기록을 요구했습니다. 펠리그는 마지못해 문서들을

건네면서, 동봉한 편지로 자신의 분노를 토로했습니다. 그는 편지에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지금 나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우리에게 앞으로 또 어떤 성가신 일이 닥칠 것이며, 그것을 막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심정입니다." 베를리너는 환자기록을 검토한 후 로드바드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냅니다.

"당신의 논문이 '뉴잉글랜드 의학저널'에 제출되기 전에 이미 모든 실험이 종결된 상태였습니다." 또한 그는 로스와 펠리그만이

제시한 평화조정안이 '사태의 원활한 중재'를 위한 최고의 방안임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결정에 만족하지 못한 로드바드는 이 모든 사태를 의회에 공개하겠다고 위협했습니다. 그러자 로스는

이를 막기 위해 외부 심사인을 임명해 모든 자료들을 다시 한 번 검토해보겠다는 제안을 했습니다.


그는 외부 심사인으로 미국 국립보건원의 저명한 원장인 조셉 랠을 추천했습니다. 조셉 랠은 이 제안을 받아들였지만,

몇 달 동안 아무 심사도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 로드바드는 국립보건원을 떠났고, 로스에게 정기적을 연락을 해서

심사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었습니다.


곤혹스러워하던 로스는 결국 하버드 대학의 조교수로 있던 제프리 플라이어에게 도움을 청하게 됩니다. 플라이어는

나이가 매우 젊었지만 당뇨병 연구가로 이미 높은 명성을 얻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일대의 사건을 조사 및 보고할

의향이 있다고 전했습니다.


심사 초반부에 매우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기 때문에 펠리그는 최악의 경우는 지나갔다고 확신했고, '아메리칸 의학저널'에

논문을 게재해도 된다고 전했습니다. 이로써 그는 모든 의문들이 확실하게 해결되기 전까지는 논문을 출판하지 않는다는

로스와의 약속을 위반하게 됩니다.



 

이 불미스러운 표절사건 역시 플라이어가 1980년 1월 실제로 보스턴에서 예일로 향하는데 일조했을 것입니다. 예일대에

도착한 그는 신경이 날카로웠던 소만과 면담을 가졌고, 소만은 자신의 자료들을 망설이며 그에게 건넵니다. 플라이어가 일부

환자들의 인슐린결합 연구에 관한 측정 그래프를 제시하라고 소만에게 요청했을 때, 소만은 그들이 이미 그 서류를 버렸고,

자신은 그저 일부 데이터만을 가지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플라이어는 의구심을 품었고,문서의 개별수치를 바탕으로

그래프를 재구성했습니다. 


그러나 그 그래프는 출판된 논문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플라이어가 소만에게 계속 압력을 넣자 결국 소만은 실험 전체가

완전히 허구임을 실토하게 됩니다. 이어지는 학장과의 면담에서도 소만은 자신의 만행을 다시 한 번 부정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집중적인 추궁이 계속되자 마침내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제가 데이터를 조작하고 그래프를 수정했습니다."

그 후 그의 운명은 마침표를 찍었고, 그는 파멸당한채 인도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펠리그의 분노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아메리칸 의학저널'에 게재된 논문을 철회해야 했으며, 또 다른 

심사인이 연구소로 찾아와 소만의 다른 연구 자료들을 모두 검토했습니다. 특히 펠리그는 컬럼비아 대학에 사건 전말을

알려야 한다는 사실에 몹시 난처해했습니다. 그는 컬럼비아 대학에서 드높은 명성을 유지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소만을 조교수로 데려오기 위해서 대학 측과 협상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컬럼비아 대학이 여전히 명성을 유지하고 펠리그 역시 그곳에서 교수직에 오른 것을 보면 이 면담에서 그가 얼마나 노련하게

처신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플라이어가 펠리그에게 일반적으로 '데이터들을 약간 미화하려는' 경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때, 그는 새로 취임한 교수직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한편 그가 예일 대학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예일 대학 측에서는 그가 개인적으로 사기행각을 벌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사이 로드바드 박사는 인턴 과정을 마치고 개인병원을 개업했습니다.

믿기 힘든 불미스런 사건을 겪으면서 학술논문을 저술하는 기쁨은 그녀에게서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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